황해도 굿의 명무 김정숙

 


Date : 11-09-22 20:20
  <오마이 뉴스> 2005 5 [위안부 해원진혼굿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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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 나 춘자여라우. 엄니가 보고자파 왔써라우."
"이 썩을 년아 나가 뒤져부러라. 동네 챙피해서 못살것다."
"그러지 말고 문 좀 열어주쇼, 나 엄니가 보고자파 왔단 말이요."

13살 어리디 어린 춘자는 그렇게 문 밖에서 이슬을 맞다가 결국 감나무에 목을 매달고 말았다.

▲ '다함께 손잡고 오시옵소서'라고 쓴 플래카드 앞에 선 황해도 굿 보존 전수회 회원들
ⓒ 서정일
꽃다운 나이, 한 많은 청춘. 사지가 찢기고 가슴이 뭉그러지는 아픔 속에서 악몽과도 같은 일본놈, 일본땅을 뒤로 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엄니를 부르며 찾아왔지만, 춘자는 감나무 아래서 싸늘한 주검을 맞이한다.

"엄니 원통해서 못죽겄소, 억울해서 못죽겄소. 나 좀 살려주쇼."

무당 김혜숙씨, 전라도 원혼들을 애절하게 부른다.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원통하게 죽어간 전라도의 4만 꽃다운 원혼들. 그들의 몸부림을 그대로 내려받아 함께 고통을 나눈다. 중얼거리다가 뛰다가 빌다가 엎드리다 쓰러진다. 그리고 절규하듯 지르는 외침은 보는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

죽은 자의 한, 산 자의 한

5월 28일 토요일, 황해도 굿 보존 전수회는 20여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시고 순천낙안읍성에서 해원 진혼굿을 펼쳤다. 일본군 위안부로 피해를 입은 원혼들을 달래주기 위해 작년에는 통영에서 치렀고 올해는 전라도 땅을 찾은 것.

"그들이 원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 내가 살던 곳. 가장 편안하기 때문이죠."

이사장 김상순씨, 원혼들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편안하게 고향을 찾는 마음으로 굿판에 오시라는 의미에서 낙안읍성을 택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억울한 원혼들이 한 분이라도 소외됨이 없이 '다함께 손잡고 오시옵소서'를 주 무대에 내걸었다.

▲ 위안부 할머니, 춘자를 만나 울고 엄니를 만나 또 한 번 운다.
ⓒ 서정일
하지만 그 말 속에서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배려의 마음도 엿볼 수 있다.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서로를 위로하자는 뜻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행사가 진행되기 하루 전에 위안부 할머니 20여명은 순천에 도착했다. 순천만도 돌아보고 오후엔 위안공연에도 참석했다. 순천시장이 마련한 푸짐한 만찬의 시간도 즐거웠지만, 은근히 낙안읍성에서의 저녁시간을 기다렸다. 과거로 돌아가고 소녀로 돌아가 옆집 친구인 춘자도 만나보고 '엄니'와 함께 밤을 새우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낙안읍성, 고샅길을 걷자마자 곧바로 갈래머리 소녀로 돌아간다. 악몽 같던 지난 50여년의 세월을 금방 뛰어넘어 마냥 행복해 한다. 나즈막한 초가집은 그들의 고향집이 되고 담 너머엔 친구인 '춘자'가 있다.

밤이 깊었다. 동네 먼 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개구리 소리도 정겹다. 마루에 앉아 하늘을 본다. 또다시 그리운 엄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니를 불러본다. 어느새 엄니는 옆에 와 있다. 50여 년 전 꽃다운 소녀시절로 돌아가 방문을 열고 이불을 편다. 따뜻한 구들장, 엄니의 손을 꼭 잡고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재롱도 피워본다.

20여 위안부 할머니들, 춘자를 만나 울고 엄니를 만나 울고

▲ 황해도 굿 보존 전수회 회원중 한 무당이 해원 진혼굿을 하고 있다.
ⓒ 서정일
날이 밝았다. 하늘과 땅에 해원진혼굿을 알리고 굿청의 주당을 물리는 거리인 신청주당물림이 시작된다. 징과 장구가 울리고 순식간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하늘과 땅이 맞닿는 혼돈의 시간이 온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친구인 춘자를 맞이하고 소녀시절로 돌아가 엄니를 만난다.

엄니를 만나 원없이 운다. 춘자를 만나 그 행색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인 양 또다시 눈물 짓는다. 그리고 춘자의 젖은 옷, 피 묻은 옷을 새옷으로 갈아입힌다. 아리랑을 부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조국과 고향을 향해 눈물 흘리며 불렀다던 아리랑이다. 춘자와 함께 부르고 있다. 엄니와 함께 부르고 있다. 그러다 문득 춘자의 죽음에 관해 생각한다.

"엄니 나 춘자여라우, 엄니가 보고자파 왔써라우."
"이 썩을 년아 나가 뒤져부러라. 동네 챙피해서 못살것다."
"그러지 말고 문 좀 열어주쇼, 나 엄니가 보고자파 왔단 말이요."

13살 어리디 어린 춘자는 그렇게 문 밖에서 이슬을 맞다가 결국 감나무에 목을 매달고 말았다.

엄니, 여기 20여명의 또 다른 우리의 춘자가 엄니를 간절히 부르고 있답니다. 그들이 꼭 껴안고 살을 부비며 자고 싶은 엄니, 그것은 바로 조국이요 고향이랍니다. 엄니, 여기 이땅에 남은 마지막 20여명의 갈래머리 소녀들을 또 다시 버리지 마세요. 그들은 어려웠던 지난시절 엄니의 자랑스런 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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